서둘지 않되 멈추지 않는… 예술이 된 평보의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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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5-07-29 23:47
입력 2025-07-29 23:47

20세기 한국 서예계의 거목
서희환 회고전 ‘보통의 걸음’

초기~말년 작품 120여점 전시
한글 판본 통해 한글 원형 연구
서희환 글씨 비문·현판 등 다양
1만 자 쓴 ‘월인천강지곡’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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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보 서희환(1934~1995)은 20세기 한국 서예계를 대표하는 거목이다. 일생을 한글 서예에 바쳤다. 서희환이 1만 자를 수놓듯 쓴 ‘월인천강지곡’을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30주기 회고전에서 만날 수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평보 서희환(1934~1995)은 20세기 한국 서예계를 대표하는 거목이다. 일생을 한글 서예에 바쳤다. 서희환이 1만 자를 수놓듯 쓴 ‘월인천강지곡’을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30주기 회고전에서 만날 수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올해 1월 ‘한글 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가운데 평생 한글 서예에 몸담았던 서예가 서희환(1934~1995)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이 선보이는 ‘평보 서희환: 보통의 걸음’이다.

올해는 서희환의 30주기로 그는 20세기 한국 서예계를 대표하는 거목이다. 서희환은 특히 1968년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서예가로는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그간 한문 서예가 주류이던 서단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김학명 학예사는 “30대에 대통령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는 게 엄청난 경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에 휩싸이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며 “‘한글 서예는 근본이 없는 글씨다’, ‘스승인 소전 손재형의 글씨와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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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보 서희환 ‘서예정신’. 예술의전당 제공
평보 서희환 ‘서예정신’.
예술의전당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서희환의 초기작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모두 120여점을 선보인다. 한문 서예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시절부터 한글 서예에 천착하며 다양한 실험을 벌였던 때의 작품, 완숙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 주는 작품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먼저 그는 근본을 세우기 위해 한글 서예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석보’ 등 조선 전기의 한글 판본을 통해 한글의 원형을 연구했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다. 조선 후기의 궁체와 민체에서도 자연스러운 붓의 흐름을 익히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품격 있는 서체를 완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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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보 서희환의 작품 윤선도의 ‘오우가’. 예술의전당 제공
평보 서희환의 작품 윤선도의 ‘오우가’.
예술의전당 제공


서희환의 글씨는 현재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현판이다. 또 국립묘지, 임진각 등에 남긴 순국 인물에 대한 비문이나 3·1운동 기념비문, 충무공 동상문, 항일 투사 기념비문, 주시경·방정환 비문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현판을 비롯해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의 추모 비문,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현판 글씨 원본이 전시됐다. 마지막에는 1만 자를 수놓듯 써 내려간 높이 180㎝, 너비 550㎝의 ‘월인천강지곡’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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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보 서희환이 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현판.  예술의전당 제공
평보 서희환이 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현판.
예술의전당 제공


이번 전시 개최에는 30여년간 전국을 돌며 서희환의 작품 200여점을 모아 온 고창진 수집가의 역할이 컸다. 그는 아무 인연이 없었던 서희환의 작품에 매료돼 꾸준히 작품과 자료를 수집한 인물이다. 본래 ‘풍년비’와 ‘들에차’라는 두 작품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수집가가 보유하던 작품도 한지의 질감과 서체의 유사점을 눈여겨본 고 수집가가 모두 사들여 하나의 작품 ‘풍년비 들에차’로 만나게 했다.

‘서둘지 않되 멈추지 않는 보통의 걸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그의 호처럼 오래도록 외길을 걸으며 자신의 글씨를 찾던 서희환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12일까지.

윤수경 기자
2025-07-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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