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털, 더러워” 속옷 화보 싸늘한 여론… 男아이돌 제모 언제부터 ‘의무’가 됐나 [넷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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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수정 2025-08-01 09:01
입력 2025-08-01 06:46
K팝 남돌 겨드랑이털 제모 일반화돼
여성 팬덤 ‘클겨 요구’ 10여년 새 확산
체모 노출되면 “제모 왜 안 해” 지적
해외 팬덤 비교적 관대 “털은 남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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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클라인이 최근 공개한 보이그룹 SF9 출신 배우 로운의 자사 속옷 화보 일부. 일부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로운이 겨드랑이털을 드러낸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나왔다. 캘빈클라인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캘빈클라인이 최근 공개한 보이그룹 SF9 출신 배우 로운의 자사 속옷 화보 일부. 일부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로운이 겨드랑이털을 드러낸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나왔다. 캘빈클라인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남자의 겨드랑이털 노출은 ‘더럽다’ 혹은 ‘부적절하다’라는 인식. 세계적 기준에서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겠으나, 적어도 한국의 아이돌 시장에서만큼은 언젠가부터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국내 K팝 팬덤에서 ‘클겨’(제모한 겨드랑이)라는 신조어가 통용될 만큼 점점 더 많은 여성 팬들의 이른바 ‘겨털’ 혐오가 노골화하면서다. 그런데 지금의 이같은 클겨 요구는 역사, 의외로 길지는 않다.

최근 한 유명 패션 브랜드 속옷 화보에 보이그룹 SF9 출신 배우 로운이 모델로 등장한 것과 관련 일부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겨드랑이털을 놓고 ‘불쾌하다’는 반응이 다수 나오며 때아닌 논란이 됐다.

그룹 탈퇴 후 배우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로운은 이들 네티즌들로부터 아마도 아이돌 출신이 아니었다면 마주할 가능성이 작았을 겨드랑이털 지적을 들어야했다.

아이돌·K팝 관련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서는 로운의 겨드랑이털이 노출된 속옷 화보가 공유된 글에 “겨드랑이 좀 밀고 찍지. 요새 안 미는 아이돌도 있나”, “클겨는 제발 기본으로 해달라”, “클겨 아닌 거에 놀랐다”, “안 밀 수는 있지만 남의 겨털 되도록 안 보고 싶다” 등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또 다른 여초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여성시대’에서도 “설령 안 깎았더라도 보정이라도 했어야지”, “2025년도에도 겨털 있는 남자가 있다고?”, “남자 겨털 보니까 속 안 좋다” 등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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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짐승돌’ 이미지였던 신화의 2002년 곡 ‘아이 프레이 포 유’(I Pray 4 U) 뮤직비디오에서 민우의 겨드랑이털이 자연스럽게 노출된 모습(왼쪽). 오른쪽 사진은 ‘차세대 짐승돌’로 인기를 모은 몬스타엑스 출신 원호가 지난 6월 발표한 ‘배터 댄 미’(Better Than Me)에서 제모한 겨드랑이가 드러난 장면.
‘원조 짐승돌’ 이미지였던 신화의 2002년 곡 ‘아이 프레이 포 유’(I Pray 4 U) 뮤직비디오에서 민우의 겨드랑이털이 자연스럽게 노출된 모습(왼쪽). 오른쪽 사진은 ‘차세대 짐승돌’로 인기를 모은 몬스타엑스 출신 원호가 지난 6월 발표한 ‘배터 댄 미’(Better Than Me)에서 제모한 겨드랑이가 드러난 장면.


해당 게시물에서 겨드랑이털 혐오 댓글은 많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비판하거나 ‘털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취지로 옹호하는 반응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 아이돌 멤버들의 ‘클겨 모음’ 게시물은 수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국내 K팝 팬덤 사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다. 특정 신체 부위를 털 유무에 집중해 평가하는 해당 게시물은 성희롱적이라는 일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를 소비하는 네티즌 다수는 ‘남자 연예인의 겨드랑이털 제모 문화가 더 확산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반대로 겨드랑이털이 의도치 않게라도 노출된 남자 아이돌은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뮤직비디오나 방송 무대 영상에서 아이돌들의 겨드랑이털을 보게 될 일은 어느덧 거의 없어졌지만, 공항 출입국 사진 등에서 우연히라도 포착되면 팬들 사이에선 어김없이 불평이 나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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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 엑소가 2013년 8월 발표한 ‘으르렁’ 뮤직비디오(오른쪽)와 티저 영상(왼쪽). 멤버 세훈의 겨드랑이털이 보정으로 지워지기 전과 후가 대비된다.
보이그룹 엑소가 2013년 8월 발표한 ‘으르렁’ 뮤직비디오(오른쪽)와 티저 영상(왼쪽). 멤버 세훈의 겨드랑이털이 보정으로 지워지기 전과 후가 대비된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남자 아이돌의 겨드랑이털을 지금처럼 ‘죄악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 소비층인 여성 팬덤 내 클겨 선호 여론은 감지되고 있었다.

이런 흐름의 변화가 절묘하게 포착된 장면 중 하나가 3세대 아이돌 시대의 문을 연 엑소의 대표곡 ‘으르렁’ 뮤직비디오다. 2013년 8월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서 민소매 셔츠를 입은 엑소 멤버들은 하나같이 제모하지 않은 상태의 겨드랑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해당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에서는 모든 멤버들의 겨드랑이털이 없는 것처럼 보정 처리돼 있다. 겨드랑이털의 노출 여부를 두고 고민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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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웹예능 ‘용진건강원’에 출연한 샤이니 키가 남자 아이돌에 대한 ‘클겨’(제모한 겨드랑이) 선호 여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잼박스’ 캡처
2022년 9월 웹예능 ‘용진건강원’에 출연한 샤이니 키가 남자 아이돌에 대한 ‘클겨’(제모한 겨드랑이) 선호 여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잼박스’ 캡처


2세대 보이그룹 멤버 키는 2022년 9월 웹예능 ‘용진건강원’에 출연해 ‘클겨 모음’ 게시물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하며 이같은 인식 변화를 얘기했다. 그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남자가 겨드랑이털이) 너무 없는 건 이상하다(는 인식이 많았다)”며 “(지금은) 클린(제모) 선호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키는 그러면서도 “저는 2차 성징이 안 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진 않다”며 소신을 밝혔다.

클겨 요구가 다수 취향이 된 국내 K팝 팬덤과 달리 해외 팬덤에서는 K팝 남자 아이돌들이 체모가 없는 것에 대해 보다 진지한 궁금증을 가지거나 분석하려는 반응이 목격되기도 한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한 이용자는 K팝 관련 게시판에 ‘남자 아이돌의 겨드랑이털은 어디로 간 걸까’라는 글을 올려 “3세대 아이돌 이전엔 민소매 셔츠를 입었을 때 겨드랑이털이 나 있는 것을 보는 게 흔했는데 지금은 그런 남자 아이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겨드랑이털이 있는 남자 아이돌 사진을 우연히 보면 요즘 사진이 아닌 걸 아는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이 글에는 “K팝 기획사들이 과거엔 남성스럽고 짐승 같은 모습을 선호했다가 지금은 소년 같은 모습을 추구하는 것 같다”, “미의 기준과 선호도가 변화하고 있다” 등 생각을 적은 레딧 이용자들의 댓글이 달렸다.

해외 팬들은 국내 팬들보다 여전히 K팝 남자 아이돌의 체모에 너그러운 반응이 많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해당 주제에 관련 “남자 아이돌의 겨드랑이털은 섹시하다. 아이돌이기 전에 남자잖나”, “내 문화권에서는 털은 남성적인 것과 연관된다. K팝 아이돌들이 제모를 선택하는 건 괜찮지만, 개인적으로는 털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등 외국인들의 의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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