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법인 사라지면… “위탁상 ‘칼질’ 만연할 것”[유통 패러다임 바꾼 ‘가락시장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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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용 기자
강동용 기자
수정 2025-06-19 00:03
입력 2025-06-19 00:03

위탁상, 정보 독점하고 가격 좌우
농민은 가격 협상권·판로 잃는 것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질문에 답하려면 1985년 가락시장 개장 이전, 도매법인 없이 운영되던 농산물 유통의 어두운 현실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1968년 닻을 올린 용산시장 시절에는 ‘농산물 큰손’으로 불리던 위탁상이 가격을 주물렀다. 물량과 정보를 독점해 ‘후려치기’ 하는 등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농산물을 납품한 농민에게 제값을 치르지 않거나 돈을 떼먹고, 소매상에겐 비싼 값에 팔아 폭리를 취하는 위탁상의 ‘칼질’이 만연했다.

이런 불공정 거래 관행은 1985년 가락시장 출범과 함께 민영 도매법인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개선됐다. 현재 가락시장 청과시장에는 서울·중앙·동화·한국·대아청과와 농협가락공판장 등 6개 법인이 있다. 이들 도매법인은 경매를 통해 가격을 투명하게 형성하며 농산물 유통 거래 질서를 확립했다. 선별·보관·품질 관리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농산물 품질과 유통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도매법인이 없어지면 유통 과정은 단축될지 몰라도 농산물 가격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사라지고, 수요와 공급이 왜곡된다. 그러면 표준가격 형성이 어려워져 출하 농민은 얼마가 제값인지 알 수 없다. 현지 유통인이 써 주는 정산서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면 농민은 가격 협상 권리마저 잃는다. 농산물 가격 짬짜미가 횡행할 가능성도 크다.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가격 조작, 대금 미지급, 농민 착취 등 과거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이다.

농민의 안정된 판로도 사라진다. 하(下)품 농산물은 수익을 주기는커녕 폐기 처분 비용 부담만 늘리는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경매가 사라지면 가격이 품질과 무관하게 형성돼 소비자는 양질의 농산물을 먹는 것을 ‘뽑기 운’에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



가락시장 도매법인 관계자는 “도매법인은 40년간 농민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 왔다”면서 “수수료로 폭리를 취하고 가격 인상을 주도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말했다.

강동용 기자
2025-06-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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