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이기철 기자
수정 2017-05-15 10:22
입력 2017-05-09 23:05

연합뉴스DB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모로부터 1953년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출생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 죽을 받아먹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진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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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는 문재인문대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씨 댁을 방문해 큰 절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절을 받는 김시진씨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대락 선생의 증조손이다. 그의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연합뉴스 -
안희정, 기습 ‘볼 뽀뽀’9일 서울 광화문 인근 소공원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문재인 당선자의 볼에 축하 뽀뽀를 하고 있다. 2017. 5. 9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와 손자로부터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문재인 후보 경남고 졸업사진. -
거제 두 번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 생가 경남 거제시 남정마을 -
문재인 소년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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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인명구조 강습수료증 -
문재인 후보의 중학시절 모습. -
문재인 후보 학창시절(뒷줄 가운데). -
문재인 후보 고교시절 모습. -
대학시절의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대학시절 당시 문재인 -
대학시절의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대학시절 부인 김정숙씨와 여행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대학시절 부인 김정숙씨와 여행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특전사 시절 당시 문재인 -
문재인 후보가 특전사 때 점프하는 모습. -
특전사 시절 당시 문재인 -
문재인과 부인 김정숙 -
문재인과 부인 김정숙 -
문재인 후보와 부인 김정숙씨의 결혼식 모습.
연합뉴스DB -
한겨레신문 창간 때의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변호사 시절의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변호사 문재인과 어머니 강한옥 여사 -
변호사 시절 가족들과 여행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변호사 시절 가족들과 여행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문재인 후보가 아내와 함께 군에간 아들을 면회할 때 모습.
문재인 캠프 제공 -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변호사를 함께 할 때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갈 때 모습. -
변호사 시절 부인 김정숙씨와 여행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임명장 받는 문재인 -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실장 -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한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ss-20170509-1450-33-17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한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펴낸 ’빙하는 움직인다’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당시 실장이 수용했으며,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2007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화하며 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
지난 2004년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는 문재인 후보. 트래킹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식을 들었다.
연합뉴스DB -
네팔 트래킹 -
네팔트래킹 다녀와서 -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문재인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와 김대중 전 대통령 3남 김홍걸 씨가 18일 오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의원실 제공 -
문재인 후보 사격 자세문재인 후보가 2015년 6.25 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두고 군복무를 한 제1공수 특전여단에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 DB -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야권의 대선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오후 설 연휴를 맞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해 故 노무현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제공=연합뉴스 -
문재인-안철수 6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달개비에서 회동 -
양산 자택에서 생활하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DB -
투표 마치고 뒷산 오른 文 부부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일 오전 투표를 마치고 부인 김정숙(오른쪽) 여사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 인근의 뒷산을 산책하던 중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제19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문 후보가 “내일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연합뉴스 -
옷은 내가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수석 오찬장에 참석 옷을 벗을 때 청와대 직원이 벗는 것을 도와주려 하자 ”제 옷은 제가 벗겠습니다”라며 스스로 옷을 벗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17. 05. 11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위민2관 직원식당에서 직원들과 오찬을 위해 식판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그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재인을 데리고 암표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꾸려 장사를 하고 연탄배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문재인은 늘 죄송하기만하다. 강 여사는 9일 부산 영도구 자택에서 개표결과를 조용히 지켰봤다.
문재인은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영도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면서 당시 명문이던 경남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범생’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과 음주를 하다가 학교 측에 들통나는 바람에 몇 차례 정학을 당한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62)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씨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 2년 후배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씨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문재인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군인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흐뭇해했다. 실제로 그는 군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주특기가 폭파라는 사실은 점잖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반전이다.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당시 사령관 전두환에게서 받은 것이 밝혀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차 구속된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982년 처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같이 시작했다.
특히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문 후보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재인은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 일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은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그후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그는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 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끝에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후보는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대세론’을 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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