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詩IN] 차를 마시다
수정 2017-08-06 22:54
입력 2017-08-06 22:34

고스란히 상자에 담겨 내게로 왔다
때깔 고운 보자기를 풀자
쏟아져 나오는 찻잔들, 다구와 찻상
고단한 삶 속에서도 꼿꼿이 고개를 들고
친정집 진열장에서 빛을 내고 있던
어머니의 작은 조각들
야야, 인자 나는 다 필요없데이
차도 마실 만큼 마 다 아이가?
찻잔도 손에 무거븐 나이가 된 기라
생의 허물을 또 한 번 벗고
저물어갈 채비를 하시듯
벗은 허물을 가지런히 정리하신 어머니
오목한 다기마다
고봉처럼 쌓여있는 어머니의 침묵들
또르르 찻물 따라내니
하나, 둘 깨어나 춤을 춘다
침묵은 혀뿌리에 걸리고,
입 속에 스미고 내 몸을 돌아
나직한 경이 되어 허공을 울리고 있다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보듬어 찻잔을 든다
미련 없이 벗어 낸 어머니의 허물을 받아 든
중년의 내가 할 일이라는 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20회 공무원 문예대전 동상 수상작
2017-08-07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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