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詩IN] 참나무와 주름버섯
수정 2017-09-03 17:41
입력 2017-09-03 17:28

나무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겨울을 참아내더니 결국에는 말라 버렸다.
참나무 썩은 등걸에서 주름버섯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버섯은 나무를 빨리 썩게 만든다.
썩은 나무들은 또 다른 거름이 되어
청설모도 주워 먹지 않은 도토리에 싹을 틔운다.
겨울의 무서운 추위에 나뭇가지들이 말라붙었다.
말라붙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꽉 부여잡고 있는
썩은 고치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빈 껍데기인 줄 알고 툭 쳤더니 그 속에서
한겹한겹 옷을 벗으며 나비가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시내도로를 지나던 검은 차 한 대가 고양이를 쳤다.
무서운 타이어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내장이 제 살갗을 빠져나왔다.
고양이의 피가 눌어붙은 도로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그곳을 지나던 굶주린 까마귀가
썩어가는 내장을 제 뱃속에 쓸어담고선 펄쩍펄쩍 날아오른다.
모든 썩은 것들에는 생명이 있다.
누구도 심지 않은 썩은 나무등걸에 으레 주름버섯이 자라는 것처럼.
주름버섯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듯 봄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생명은 계절의 순환처럼 이어진다.
봄이 온다는 것을 몰라도 겨울이 지나면 으레 봄이 온다.
봄은 겨울 속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썩은 것의 아픔은 봄이 겨울을 밀어낸 힘으로 사라진다.

20회 공무원 문예대전 동상 수상작
2017-09-04 3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