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詩IN] 겨울 갯벌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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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나리 기자
민나리 기자
수정 2018-04-01 17:15
입력 2018-04-01 17:10

제19회 공무원문예대전 동상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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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가 열린 해안선

질척한 갯벌의 내장이 쏟아진다

언제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

침묵으로부터

귀를 테러당한 적이 있는 거기,

몇 봉지 탈수가 덜 된 파도의

물집이 남아 있고

온몸에 울음의 면적이 퍼져 있는

갯바람의

희미한 궤도가 떠돌고 있을 뿐

쓰러지는 방법을 배운 겨울 갯벌은 이제

다시는 지상에서 직립하지

않을 것이다

보라,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걸어온 길을 뱉어내고 있는 평면

생각하면, 끝은 시작의 후유증에

불과할 뿐

반드시 세상의 어딘가에

끝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음에도 평면은

왜 우리의 생애처럼 항상 끝을

향해 가고 싶을까

천정이 없는 북반구 위로

대규모의 날이 저무는 시간

죽음처럼 식어버린 방파제 위에 서서 나는

어쩌면 시작보다 더 필사적인

끝을 위하여

살다가 결국 나였음이 밝혀질 그대

어느 반대편의 저녁 속에서

내 등에 기대어 쓸쓸히 저물고 있을

그대의 빈 몸 속으로

셀 수 없으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새떼를 날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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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길 울산지방검찰청 공안과장
김두길 울산지방검찰청 공안과장
김두길

(울산지방검찰청 공안과장)
2018-04-02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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