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요구’에 막힌 자치단체장 비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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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3-06-14 00:28
입력 2013-06-14 00:00

구리·남양주 등 시의회 특별행정조사 번번이 무산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장의 비위 혐의 조사를 위해 의결한 특별행정사무조사계획이 해당 단체장들의 ‘재의요구’로 번번이 무산돼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구리시의회 김희섭 행정사무조사위원장은 13일 박영순 시장이 시의회가 결정한 고구려대장간마을 인근 음식점 이축 허가 건에 대한 특별행정사무조사를 전날 재의 요구한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시장 지시를 어겨 가면서까지 담당 공무원 3명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음식점의 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감사원 감사와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시의회 조사를 거부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시장의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시의회는 지난 4일 ‘박영순 시장의 지시를 어겨 담당 공무원 3명의 직위 해제 사태를 불러왔던 고구려대장간마을 인근 음식점 이축허가건’에 대해 이날부터 나흘간 특별행정사무조사를 하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같은 기간 감사원 감사가 예정돼 있고 시장의 고유 권한인 공무원 직위 해제 인사권을 조사하는 것도 월권이라며 재의를 요구했다.

인접한 남양주시에서는 이석우 시장이 올 들어 시의회가 통과시킨 3건의 특별행정사무조사 결정을 재의 요구, 일부 시의원들이 40여일간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반발했었다. 이 시장과 집행부는 “국공립 및 보육비 지원 어린이집 운영과정에 관한 조사계획은 남양주시 모든 어린이집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 관련법 및 조례에 위반되며, 가스충전소와 웰섬공장 인허가 관련 특위는 이미 사정기관에서 충분히 조사가 이뤄져 공무원 연루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재의 요구 배경을 설명했다.

성남시에서도 이재명 시장의 수차에 걸친 재의 요구로 어수선하다. 2011년 이후 무려 10번이나 시의회 결정에 대해 재의를 요구, “역시 변호사 출신답다”는 말을 듣고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의회 의결사항에 대해 단체장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연속해서 재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재의 요구를 받은 의회는 이를 다시 의결할 경우 재적의원 3분의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수원·성남·고양·구리·남양주·의정부 등 도시지역에선 여야 의석수가 비슷해 사실상 재의결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이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인 기초자치단체에서 의원 다수의 안건 처리에 대해 자치단체장이 재의요구를 남용하자 이를 적절히 규제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부대 신현덕 교양학과 교수는 “지방의회는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데 자치단체장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반대 결정이라고 해서 의회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문제”라며 “양측 모두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자리임을 잊기 때문에 지방정치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2013-06-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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