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자체 “모유수유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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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3-08-21 00:00
입력 2013-08-21 00:00

31개 시·군 조례제정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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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사는 주부 김모(31)씨는 얼마 전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시청 민원실을 찾았다 수유할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배가 고파 보채는 아이를 위해 빨리 젖을 물리고 싶었지만 민원실에는 모유수유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아이를 안고 민원실에서 40여m 떨어진 본청 건물 3층에 마련된 모유수유실까지 올라가야 했다.

김씨는 “시청 민원실에는 각종 제 증명을 발급받으려는 민원인들이 많이 찾고 있고, 그중에는 나와 같이 아기를 둔 주부들도 많을 텐데 모유수유실이 없다는 게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민원실 관계자는 “민원실 건물이 오래 전에 지은 탓에 낡고 비좁아 본청 건물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기도 내 지방자치단체들이 아기와 주부를 배려하는 데 무관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 본청을 비롯한 도내 31개 시·군 중 여성휴게실이나 모유수유실 설치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모자보건법’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영·유아의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해 필요한 모유수유시설의 설치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20일 경기도의회 이계원(새누리당·김포1) 의원이 경기개발연구원 의정연구센터에 의뢰한 ‘공공시설 내 모유시설 및 휴게시설’ 현황조사에 따르면 여성휴게실이나 모유수유실 설치 관련 조례가 제정된 곳이 전국적으로 서울 용산구 등 3개 자치구와 인천시 계양구 등 10개 지역에 불과했다.

경기도의 대부분 지자체는 조례 제정은 안 했어도 여성휴게실이나 모유수유실을 두고 있지만 시설은 본청 등에 국한돼 있었다. 구청이나 일선 동사무소, 산하 기관 등에는 모유수유실을 갖추지 않은 곳이 허다했다. 공무원들도 자신들이 일하는 청사 건물에 모유수유실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안산시 회계과 직원은 “시청에는 모유수유실이 없지만 민원실에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뒤늦게 “본청 건물에 있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출산 친화적 사회 분위기와 여성 배려 문화 형성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공공기관부터 ‘모유수유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와 여성 고용 촉진을 위해 출산 전후 휴가, 수유시간 등 여러 가지 보호규정을 두고 있지만 여성들을 위한 전용 여성휴게시설이나 수유실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이 의원은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자체들이 수유할 수 있는 공간 배려가 없을 뿐 아니라 모자보건법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모유 수유시설 설치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할 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며 “경기도 조례 제정에 이어 정부에 법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2013-08-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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