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역사공원 자리에 탐관오리 공덕비 “철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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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4-03-27 09:25
입력 2014-03-27 00:00
통일신라 말기 학자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최치원 선생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인 경남 함양군 상림숲에 그를 기리는 역사공원이 조성될 예정인 가운데 이 공원 부지에 조선 말기 탐관오리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어 지역 시민단체들이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함양농민회와 함양노동자연대가 중심이 된 ‘함양의 선비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군민들’(이하 함선군)은 최치원 선생 역사공원 조성지에 동학혁명을 촉발시킨 탐관오리인 조병갑의 공덕비가 있다고 27일 밝혔다. 이 공덕비는 함양군이 지난 2000년 새천년 사업의 하나로 상림숲에 역사인물공원을 조성할 때 자리를 잡았다.

당시 함양군은 지역 곳곳에 흩어진 역사 인물의 비석을 한 곳에 모아 정비했다. 이 공원에는 최치원·정여창·박지원 등 학식과 덕망이 높은 ‘함양을 빛낸 선인’ 11명의 흉상과 역대 관찰사와 군수들의 공덕비 30여 개가 있다.

함선군은 그 공덕비 가운데 하나가 조병갑의 ‘셀프 공덕비’라고 전했다. 조병갑의 공덕비에는 ‘조선말 조병갑 군수는 유민을 편케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어 고종 24년(1887) 비를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함선군은 농민에게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고 온갖 죄를 뒤집어 씌워 재물을 빼앗는 등 악행을 저지른 조병갑이 1년여간 함양군수를 지내면서 스스로 공덕비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조병갑은 이후 김해 부사를 거쳐 전북 고부군수를 지냈으며 특히 고부군수 시절 폭정을 일삼아 군민들의 분노를 사 동학혁명(1894년)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함선군은 “최치원 선생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곳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탐관오리로 기록된 조병갑의 비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함양의 수치이다”며 “동학혁명 120주년이 되는 올해 조병갑의 공덕비를 철거하는 것이 진정한 선비 정신이다”라고 주장했다. 함선군은 다음 달 초에 기자회견과 서명운동 등으로 조병갑 공덕비 철거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함양군은 현재로선 이 공덕비를 철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함양군 문화관광과의 담당자는 “잘못된 역사도 역사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철거 계획이 없다”며 “철거하려면 군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등 관련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병갑 공덕비 철거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 공덕비는 지난 2007년 1월에 비석이 옆으로 쓰러지고 비문 일부가 훼손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함양군은 상림숲에 최치원 선생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과 사상을 배울 수 있는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1만 8천여㎡의 터에 50억원을 투입해 제사 공간인 기념관과 최치원 선생의 행적에 관한 사료를 전시하는 역사사료관을 짓고 쉼터 광장과 주차공간 등 부대시설도 만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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