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가족 색출 이유… 좌도 우도 아닌 민간인… 300명 무차별 대학살
황경근 기자
수정 2018-02-20 17:47
입력 2018-02-20 17:42
‘4ㆍ3 최대 희생 ’ 북촌리 아픔 아시나요

마을 보초를 서던 원로들은 군인 시신을 군부대로 운구해 가라는 명령을 받고 들것에 실어 함덕리 주둔 부대에 찾아갔다. 흥분한 군인들은 주민 9명 가운데 경찰 가족 한 명을 빼고 모두 사살했다. 오전 11시 전후 장교의 인솔 아래 2개 소대 병력이 북촌마을을 덮쳤다. 무장 군인들은 1000여명의 주민들을 모두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다. 마을에 불을 질러 400여채 가옥이 잿더미로 변했다.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제주 출신 현기영 ‘순이삼촌 ’서 진상 드러나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는 게 여의치 않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십명씩 끌고 나가 인근 당팟과 너븐숭이, 탯질 밭에서 300여명을 집단 학살했다. 오후 4시쯤 대대장은 남은 주민들에게 다음날 함덕으로 소개 명령을 내리고 학살을 중단했다. 주민 일부는 산으로 피신했고 함덕으로 간 사람 중 100여명이 추가로 희생됐다.
●작년 너븐숭이 등 유적 순례 4ㆍ3길 개통
북촌마을은 4·3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서슬 퍼런 권력에 아무도 말 못 하는 시절 이 비극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1978년 발표되면서 세상 밖으로 다시 떠올랐다. 제주도는 2007년 너븐숭이에 희생자 위령비와 기념관을 건립하고 ‘순이삼촌’ 문학기념비를 설치해 유적지로 조성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북촌마을 4·3길’이 개통됐다. 지난 7일 열린 위령제에서 이승찬 4·3희생자 북촌리 유족회장은 “4·3의 현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가가 달리 되고, 일부 극우 세력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4·3을 바라봐 유족들의 마음이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며 “70주년을 계기로 화해와 상생이 충만한 평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2018-02-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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