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느림의 미학… 추억 배달부 느린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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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화 기자
김상화 기자
수정 2019-06-04 02:32
입력 2019-06-0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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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군위군 ‘군위 사라온 이야기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느린 우체통에 그림엽서를 넣고 있다.
3일 군위군 ‘군위 사라온 이야기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느린 우체통에 그림엽서를 넣고 있다.
휴대전화 문자,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빠름’이 대세가 된 시대에 우체통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오히려 ‘느림’ 때문에 사랑받는 우체통도 있다. 지자체와 우정사업본부 공동 사업인 ‘느린 우체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런 느린 우체통이 추억 배달부 역할을 하며 전국 주요 관광지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3일 우정사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280곳에 느린 우체통이 설치됐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69곳으로 가장 많다. 이어 경기 58곳, 충청 42곳, 부산 40곳, 전북 24곳, 전남 15곳, 강원 12곳, 서울 11곳, 제주 9곳 등이다.

경북의 경우 경주 불국사역·보문관광단지, 문경새재, 포항운하관 광장·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 영주 무섬마을, 경산 갓바위·남매공원 등지에 느린 우체통이 설치됐다. 올 들어서도 김천 직지사 입구와 성주 세종대왕자태실·한개마을·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입구에 느린 우체통이 자리잡았다.

이 가운데 보문관광단지 느린 우체통과 구룡포 근대문화거리 느린 우체통은 지난 한 해 동안 각각 4만여통과 2만 2000여통의 엽서가 접수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미국, 일본, 홍콩, 캐나다, 영국 등)로 엽서가 발송돼 이들 지역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가 됐다.

느린 우체통은 시군구와 지역 우체국이 2014년부터 손잡고 추억을 기념할 장소에 우체통을 설치하고 지역의 관광지 사진엽서를 제작, 비치해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우편서비스다. 관광객이 무료로 제공되는 맞춤형 엽서에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6개월이나 1년 뒤 적어둔 주소로 배달해 준다.

이날 조선시대 역사문화 재현 테마공원인 군위군 사라온 이야기마을에서 만난 김영미(28)씨는 “속도와 편리함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에 기다림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어 느린 우체통을 이용했다”며 활짝 웃었다.

변남숙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느린 우체통 업무담당자는 “예전엔 연애 및 안부 편지 등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서신이 우편물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요즘은 각종 고지서와 광고 홍보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면서 “느린 우체통 사업을 통해 평소 못했던 말이나 가슴 깊이 간직했던 속마음을 전달하는 손편지가 전국으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특별한 추억을 간직한 느린 우체통이 관광객 재방문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다른 관광지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2019-06-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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