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 가도 치료… 순천, 전국 최초 ‘지역 완결 공공의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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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필 기자
최종필 기자
수정 2025-04-09 01:29
입력 2025-04-09 01:29

시 “2025년은 혁신 원년” 선포
의료 격차 해소·시민 건강 박차

“치료받지 못해 생명 잃는 일 없게”
의대 설립에 10년 이상 소요 예상
지역 가용 자원 육성·네트워크화
‘한 대학병원’ 같은 시스템 만들어

소아·응급의료 분야 선도적 성과
‘달빛어린이병원’ 3곳으로 늘어
정부 ‘AI 앰뷸런스’ 사업도 유치
심뇌혈관질환센터 단계적 구축
전남 순천시가 전남권 의과대학 유치 난항 속에서도 지역 의료 혁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순천시는 올해를 ‘지역의료 혁신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통해 의료 격차 해소와 시민 건강 증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방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와 의료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공공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환자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가지 않고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역 의료자원을 육성하고 네트워크화해 하나의 대학병원처럼 기능하도록 하는 순천시의 ‘지역 완결 공공의료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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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규 순천시장이 지난해 5월 유관기관 및 단체장 간담회에서 의과대학 유치, 차세대 공공자원화시설 등 현안 과제를 브리핑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노관규 순천시장이 지난해 5월 유관기관 및 단체장 간담회에서 의과대학 유치, 차세대 공공자원화시설 등 현안 과제를 브리핑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인구 28만명으로 전남 최다 인구 도시인 순천시는 지난해까지 전남도와 함께 순천대와 목포대 통합의대 설립을 적극 추진했다. 두 대학은 내년 3월까지 통합을 목표로 합의하고 통합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의대 정원 확대 철회, 정국 혼란, 조기 대선 등 정치적 변수로 의대 설립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순천시는 의과대학 설립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 현재 가용한 의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시민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자체적인 의료 인프라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8일 “병이 의사를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며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지방소멸 대응의 관건이 될 의대 유치 또한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고 강조했다. 노 시장은 “지역에 의과대학이나 대학병원이 없어도 현재의 의료자원을 최대한 연계하는 방안이 시급하다”며 “의료기관 역할 분담을 통해 새로운 지역 응급의료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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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달빛어린이병원에서 한 어린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순천시 제공.
순천 달빛어린이병원에서 한 어린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순천시 제공.


우선 순천시는 소아 및 응급의료 분야에서 선도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전남 제1호 ‘달빛어린이병원’은 현재 3곳으로 확대됐다. 지난 한 해 동안 5만여명이 찾는 등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용률로 보면 순천 시민이 67%를 차지했다. 이어 인근 지역인 여수·광양시 등 주변 도시 이용자도 33%에 달하는 등 광역 의료 수요도 충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순천형 소아응급실’을 가동할 예정이다. 중증 소아 환자 진료 협진체계를 구축해 타 지역 전원율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또 이동형 인큐베이터와 인공호흡기 등 신생아 전문 응급장비를 탑재한 전용 구급차를 도입해 위급상황 발생 시 상급병원으로의 안정적 이송이 가능하도록 대응 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중증·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일도 핵심 과제다. 순천시의 중증응급환자 전원율은 10.7%로, 전국 평균 3.9%를 크게 넘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공지능(AI) 앰뷸런스’ 시범사업을 유치했다. AI 앰뷸런스 시범사업에는 순천을 거점으로 전남 동부권 5개 시군의 24개 구급대와 동부권 13개 응급의료기관이 참여한다. 응급상황 발생부터 치료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환자 정보를 빠르게 연계하고 최적의 이송 병원과 경로를 안내해 중증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 순천시는 국내 질병 사망 원인 2위로 꼽히는 급성 심근경색, 뇌출혈 등 중증 질환에 대응하기 위해 성가롤로병원을 중심으로 심뇌혈관질환센터 구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성가롤로병원은 지난 1월 보건복지부가 전국에서 10곳만을 지정한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에 선정됐다. 순천시는 내년에 치료·예방·재활·고난도 전문치료까지 가능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확대 지정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시는 지역 의료기관을 하나로 묶어 대학병원급 네트워크를 만드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필수의료지원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재단은 지역 의료체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운영 예산은 연간 40억원으로 이 중 30억원은 시 출연금, 10억원은 기부금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전남연구원에서 타당성 검토를 하고 있다. 상반기에 결과가 공개되면 주민 의견 수렴, 조례 및 정관 제정 등의 절차를 거쳐 설립·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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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치매검진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순천시 치매안심센터 직원이 보건소와 1시간여 떨어진 외서면을 찾아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검사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찾아가는 치매검진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순천시 치매안심센터 직원이 보건소와 1시간여 떨어진 외서면을 찾아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검사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필수의료지원재단은 지역 의료주체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조기에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의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한 서비스 개선을 넘어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합동평가에서 전국 치매안심센터 256곳 중 1위를 차지했다. 제주도와 대전시에서 전원된 긴급·응급분만 산모를 현대여성아동병원에서 안전하게 진료하는 등 전국에서 찾아드는 명품 의료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노 시장은 “의료 환경 개선은 시민 삶의 질 향상의 핵심”이라며 “치료받지 못해 길 위에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공공의료 시스템을 더욱 견고히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의과대학 유치의 장기화에도 순천시는 소아, 응급, 중증질환 등 분야별 의료 대응력을 꾸준히 강화하는 등 지방 의료 모델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자체적인 의료 혁신을 통해 순천시가 완성해 가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가 또다시 모범적인 지방 의료모델로 주목받을지 주목된다.

순천 최종필 기자
2025-04-0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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