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신과 치료비 100% 본인부담…서러운 환자들

정현용 기자
수정 2016-11-09 18:33
입력 2016-11-08 18:20
보험가입 등 사회적 차별 탓
건강보험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정신질환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치료비 100%를 본인 부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환자들이 취업 불이익과 생명보험 가입 거부를 우려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 진료를 기피하는 환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정신질환 외래진료에 건강보험 청구코드로 ‘Z코드’(상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Z코드는 일반 정신질환 청구코드인 ‘F코드’와 달리 어떤 질병으로 진료받았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Z코드 환자는 2012년 5만 1691명에서 지난해 9만 482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Z코드로는 약 처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문치료는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Z코드로 상담받은 환자 중 일부가 증상을 참다못해 스스로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는 ‘유령환자’로 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유령환자를 자처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 탓이다. 내년 5월 기존 정신보건법에서 개정돼 새로 시행되는 ‘정신건강증진법’은 정신질환 범위를 ‘독립적 일상생활을 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축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법 제732조는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해 정신질환자의 생명보험 가입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군과 경찰 등 일부 기관은 직원 채용 때 정신질환 병력을 조회하려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의료계의 인권침해 지적에 정책을 철회한 바 있다. 석정호(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는 “우울증 환자 100명 중 15명만 약 처방을 받을 정도로 사회적 편견이 심각하다”며 “질병 경중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화하는 대안을 만들어 생명보험 가입 장벽을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철현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도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고 약물로 증상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한데 불치병처럼 매도하는 사회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월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태 조사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외부기관에 실태 파악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라며 “용역을 마무리한 다음에 구체적 대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2016-11-0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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