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우문현답, 권한위임은 과감하게 [박준희의 정담은 자치]
수정 2020-10-08 10:09
입력 2020-10-08 10:09

만약 그 건물이 해당 구청(기초자치단체)의 자산으로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민 수요조사나 민관협치 프로그램 등 가능한 방법을 가동해 용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해당 건물이 광역시 관할이거나 중앙정부 관할이면 구청에서 희망하는 대로 용도를 변경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구나 그 건물이 도시자연공원구역 내에 있다면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까지 엮인 터라 구청에서 자율적, 창의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잘 모르는 주민은 구청장이나 구의회 의원, 공무원을 만날 때마다 ‘왜 그 좋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털어놓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 건물은 서울시 것이라서 우리 구청에서 어떻게 할 수 없다니까요’로 거의 정해져 있다. 위의 건물은 하나의 예에 불과할 뿐 제도, 시설, 서비스 등 지방행정 각각의 분야마다 구청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대응할 권한이 없는 문제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특히 구청장과 주민 간의 직접 소통창구인 ‘관악청’으로 찾아오는 주민을 만나 민원을 경청하다보면 구청의 행정력으로 결정하거나 해결해줄 수 없는, 광역시나 중앙정부의 권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해결책이 없거나 안 보이는 것은 아니나 구청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경청하면서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길을 자문해주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한 예로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단지 입구 도로에 설치된 중앙차선분리대를 제거하고 비보호 좌회전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아예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는, 건의 사항도 구청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선 지방정부(공무원들)의 핵심역량은 대국민 행정의 최전선에서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행정을 펼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정책 시행, 시설 운용, 행정 서비스 제공을 직접 현장에서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행착오 개선이나 효율성 강화를 위한 처방도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음을 뜻한다. 바로 ‘우문현답’의 중요성을 말한다.
향후 예상되는 개헌이나 국회 입법 등을 통해 명실공히 자치분권 시대를 열어나갈 때 중앙정부는 광역시·도정부를, 광역시·도정부는 기초자치정부의 ‘우문현답’ 능력을 믿고 권한위임을 아래로 과감하게 해야 자치분권의 실효가 제대로 발휘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한다. 자치분권에서 주민과 가까운 지방정부로의 권한위임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다다익선(多多益善)임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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