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에 깨우친 한글, 행복한 시인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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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김동현 기자
수정 2015-09-01 23:59
입력 2015-09-01 23:20

백복순씨 성인문해교육 특별상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고/ 크게 소리 질러도 울리지 않고/ 어깨를 펴도 더욱 오그라들고/ 그냥 코딱지만 했었다/ …나는/ 꿈을 꾸는/ 행복한 배추흰나비.’(백복순 할머니의 시 ‘배추흰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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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복순씨
백복순씨
올해 70세인 백복순 할머니는 평생 한글을 몰랐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정류장을 알 수 없어 다른 승객에게 항상 “몇 정거장 지나서 내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깜빡 손가락 꼽는 것을 놓치면 하차역을 놓치는 탓에 자리를 양보해도 꼭 출입구 앞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올 3월 한글교실 문을 두드렸다. 금천구 성인문해교실이다. 그는 “세상에 글 모르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가보니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노래를 좋아한 백 할머니는 글을 배우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70년을 살았는데 한글을 알고 나니 새롭고 각별한 세상이 시의 소재다. “차곡차곡 시를 쓰다 보니 시인 같다고 칭찬도 많이 해줬다”고 그는 수줍게 웃었다.

얼마 전 큰 상을 받았다. 금천구는 백 할머니가 ‘2015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1일 밝혔다. ‘배추흰나비’다. 구 관계자는 “전국 5658개 출품작 중 선정된 작품이라 의미가 있다”면서 “할머니가 한글을 알고 애벌레에서 배추흰나비가 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구 관계자는 “성인문해 학습자들이 꿈을 이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2015-09-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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