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복서 조지 포먼, 76세 일기로 타계…최고령 헤비급 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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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국 기자
박성국 기자
수정 2025-03-22 23:41
입력 2025-03-22 20:44

21일 가족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
1970년대 무함마드 알리와 라이벌
목회자와 성공학 강사로 평온한 노년

현역 시절 ‘KO 머신’으로 세계 복싱계를 평정했던 복서 조지 포먼이 타계했다. 향년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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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5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헤비급 챔피언전에서 조지 포먼(왼쪽)이 미이클 무어러의 턱에 왼손 펀치를 집어넣고 있다. 포먼은 이 경기에서 무어를 꺾으며 최고령(당시 45세)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라스베이거스 AP 연합뉴스
1994년 11월 5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헤비급 챔피언전에서 조지 포먼(왼쪽)이 미이클 무어러의 턱에 왼손 펀치를 집어넣고 있다. 포먼은 이 경기에서 무어를 꺾으며 최고령(당시 45세)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라스베이거스 AP 연합뉴스


미국 매체 TMZ는 21일(현지시간) 포먼 유족의 성명서를 인용해 그가 이날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유족은 “포먼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포먼은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후 이듬해 무함마드 알리에게 권좌를 내어줄 때까지 40연승 무패 행진을 달렸다.

또한 은퇴 10년 후 링에 복귀, 1994년 45살의 나이로 헤비급 최고령 챔피언으로 등극한 전설적인 복서다.

포먼의 가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도주의자이자 올림피언,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던 그는 선의와 힘, 규율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가족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다”고 고인을 기렸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랐던 포먼은 어린 시절 폭행과 절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살다가 직업학교에서 복싱을 접하고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탁월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빠르게 헤비급 강자로 올라섰던 포먼은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복싱 헤비급 결승에서 요나스 체풀리스(당시 소련)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69년 프로로 전향한 포먼은 1973년 무패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해 TKO 승리를 따내며 최정상에 올랐다.

두 차례 방어전에 성공한 포먼은 1975년 알리와 ‘정글의 대소동’이라 회자되는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포먼은 승리를 자신했지만, 링에서는 알리의 지능적인 경기 운영에 점점 끌려들어 갔고, 결국 8라운드에 KO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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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두 복싱 영웅
별이 된 두 복싱 영웅 1993년 3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베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에서 만난 두 복싱 영웅 무함마드 알리(왼쪽)와 조지 포먼. 포먼에게 프로 첫 패배를 안긴 알리는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2016년 74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웨스트 할리우드 AP 연합뉴스


프로 첫 패배를 당한 포먼은 알리와 재대결을 희망하며 승리 행진을 벌이다가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하며 링을 떠났다.

은퇴 후 목사로 목회자의 삶을 살던 포먼은 청소년 센터 기금을 련하고자 1987년 38세의 나이로 복귀를 선언했다. 이어 1994년 45세의 나이로 마이클 무어러를 꺾고 최고령 헤비급 복싱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포먼의 통산 성적은 81전 76승(68KO) 5패다.

1997년 링을 완전히 떠난 포먼은 성공학 강사와 복싱 해설위원, 목회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평온한 노년을 보냈다.

박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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