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 몰수 뒤 3조 비트코인 사라져…천즈, 제재망 뚫고 해외 이전 정황 [핫이슈]

윤태희 기자
윤태희 기자
수정 2025-10-18 09:25
입력 2025-10-18 09:22

프린스그룹 지갑서 대규모 이동 포착…태자 단지선 한국인 등 감금·강제동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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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적의 중국인 천즈(38) 프린스그룹 회장과 비트코인 이미지. 사진=캄보디아 데일리
캄보디아 국적의 중국인 천즈(38) 프린스그룹 회장과 비트코인 이미지. 사진=캄보디아 데일리


미국과 영국 정부가 캄보디아 재벌 천즈(38)와 프린스그룹을 전방위 제재한 뒤 압수되지 않은 비트코인 일부가 해외 지갑으로 조용히 이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천즈가 운영한 태자 단지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감금돼 각종 온라인 금융사기와 투자 유인 범죄에 강제로 동원된 사실도 드러났다.

미·영 “초국가적 범죄조직”…비트코인 14조 원 압수미국 재무부와 영국 외무부는 15일 공동성명을 내고 천즈 회장과 프린스그룹을 “동남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사기와 돈세탁 조직”으로 규정했다.

미국 법무부는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 기소장을 제출하며 비트코인 12만7271개, 약 14조4000억 원어치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천즈가 피해자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온라인 도박, 암호화폐 채굴, 부동산 거래망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조지프 노첼라 연방검사는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투자사기 중 하나”라며 “천즈는 불법 이익을 숨기기 위해 외국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폭력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3조3000억 원 ‘조용한 이동’…“제재 회피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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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5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프린스 인터내셔널 플라자 인근을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미국 당국은 이날 프린스그룹 설립자 천즈(영문명 빈센트)를 기소하며, 그가 암호화폐 사기와 강제노동에 연루된 초국가적 범죄조직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0월 15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프린스 인터내셔널 플라자 인근을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미국 당국은 이날 프린스그룹 설립자 천즈(영문명 빈센트)를 기소하며, 그가 암호화폐 사기와 강제노동에 연루된 초국가적 범죄조직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암호화폐 추적업체 아캄 인텔리전스는 16일 “천즈 관련 지갑에서 약 3조3000억 원 규모의 비트코인이 새로운 주소로 이전됐다”고 밝혔다.

이전된 자금은 비트코인 채굴업체 루비안을 거쳐 해외 거래소와 익명 지갑으로 분산된 것으로 파악됐다.

아캄 측은 “제재가 집행된 이후 이뤄진 이동으로 천즈 측이 미국의 압류망을 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암호화폐 분석 기업 엘립틱도 “일부 거래는 블록체인상에서 명백한 세탁 패턴을 보였다”며 “루비안 주소에서 여러 지갑으로 쪼개진 뒤 믹싱 서비스를 통해 자금이 숨겨졌다”고 설명했다.

“태자 단지, 온라인 사기 산업의 심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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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범죄조직 배후로 알려진 프린스그룹
캄보디아 범죄조직 배후로 알려진 프린스그룹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ㆍ감금이 잇따라 발생하며 정부가 대응에 나선 가운데 1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최대 범죄단지로 꼽혔던 ‘태자단지’ 운영 등 조직적 범죄의 배후로 알려진 프린스그룹에서 운영하는 은행의 모습. 프린스그룹과 그 회장인 천즈는 캄보디아 등지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며 전 세계 피해자들의 돈을 뜯어내고 인신매매한 노동자들을 고문하는 불법 스캠(사기)센터를 운영한 혐의로 지난 14일 미국ㆍ영국 정부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2025.10.17 연합뉴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천즈가 운영한 프린스그룹 산하 ‘태자 단지’를 “캄보디아 사이버 범죄 산업의 심장부이자 강제노동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프놈펜 외곽과 시아누크빌, 코콩 지역에 조성된 대규모 복합 단지는 겉으로는 부동산과 카지노 개발 사업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금융사기와 허위 투자 플랫폼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전역의 53개 사기 단지 가운데 태자 단지가 규모와 폭력성, 조직력 면에서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탈출자들은 “도망치면 전기충격과 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곳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감금된 채 온라인 유인 사기와 투자 조작 행위 등에 강제로 투입됐다.

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국제 비판 속에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한국인 64명을 가뒀고, 이 중 59명은 단속 과정에서 검거됐으며 5명은 자진 신고로 구조됐다.

“전세기 인천 도착”…역대 최대 규모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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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8일 캄보디아 캔달주 테초국제공항에서 한국 경찰 관계자들이 송환용 전세기 인근에 서 있다. 캄보디아 당국은 온라인 사기 단속 과정에서 구금된 한국인 60여 명을 이날 새벽 한국으로 송환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0월 18일 캄보디아 캔달주 테초국제공항에서 한국 경찰 관계자들이 송환용 전세기 인근에 서 있다. 캄보디아 당국은 온라인 사기 단속 과정에서 구금된 한국인 60여 명을 이날 새벽 한국으로 송환했다. AFP 연합뉴스


캄보디아에서 구금된 한국인 64명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가 18일 오전 8시 37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번 송환은 한국 국적기를 통한 세 번째 집단 송환이자 역대 최대 규모다.

이들은 대부분 캄보디아 ‘웬치’로 불리는 범죄 단지에서 전화금융사기나 온라인 유인형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와 인터폴 적색수배자도 포함돼 있으며, 국적기 탑승 직후 체포 절차가 집행됐다.

앞서 구금된 한국인 4명은 지난 14일과 17일 각각 국적기를 통해 먼저 송환됐다.

이번 전세기에는 경찰 호송조 190여 명이 함께 탔으며 귀국 즉시 64명 전원이 체포됐다.

정부 “한·캄 TF로 정보 공유·재입국 차단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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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테초국제공항에서 한국 경찰관들이 이동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 당국은 온라인 사기 등 범죄에 연루돼 구금되거나 구조된 한국인 64명의 송환을 위해 전세기를 공동 운항했다. EPA 연합뉴스
2025년 10월 1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테초국제공항에서 한국 경찰관들이 이동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 당국은 온라인 사기 등 범죄에 연루돼 구금되거나 구조된 한국인 64명의 송환을 위해 전세기를 공동 운항했다. EPA 연합뉴스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캄보디아 측이 한국인 추방자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제공하기로 했다”며 “재입국 차단과 재발 방지를 위해 ‘한·캄보디아 합동대응 전담반(TF)’를 정례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입국 후 공항현장대응단 215명을 추가 투입해 안전하게 압송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TF 회의를 통해 양국 경찰이 수사 정보를 교환하고, 범죄 연루 한국인의 조기 송환 등 실질적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6월 이후 전국 단위 단속을 통해 3400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천즈, ‘훈 마넷 고문’ 출신…정권 핵심서 사라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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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5일 캄보디아 프놈펜 국회의사당에서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왼쪽)가 국적법 개정안 심의 세션에 참석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8월 25일 캄보디아 프놈펜 국회의사당에서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왼쪽)가 국적법 개정안 심의 세션에 참석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천즈는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2014년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했다.

2010년 설립한 프린스그룹을 부동산과 금융, 카지노로 확장하며 급성장시켰고 훈센 전 총리와 훈 마넷 총리, 사껭 전 부총리 등 고위 인사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는 2024년 12월 프린스은행 이사회 의장에서 사임한 직후 종적을 감췄다.

현지에서는 중국 송환설과 국적 박탈설이 동시에 퍼지고 있으며, 프린스그룹 수사 직후 프놈펜을 떠나 은신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문가 “암호화폐·사이버 사기 공생 구조 깨야”인포블록스의 사이버위협 분석가 존 보이치크는 “이번 미·영 제재는 큰 타격이지만 프린스그룹 네트워크의 결제망과 도메인을 해체하지 않으면 조직은 곧 재편돼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신매매 대응 전문가 마크 테일러는 “천즈는 캄보디아 엘리트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정부의 보호를 받아왔다”며 “캄보디아는 동남아 온라인 사기 거점이자 자금 세탁 중심지”라고 경고했다.

캄보디아 “법 절차 존중”…국제사회 “책임 회피하지 말라”터치 속학 내무부 대변인은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면 모든 나라와 협력할 것”이라며 “법을 위반한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앰네스티와 미국 국무부는 “캄보디아 당국이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조직을 방조하거나 묵인했다”고 비판했다.

샘 메아스 민주주의·정책 행동위원회 대표는 “캄보디아가 국제 신뢰를 회복하려면 천즈를 FBI에 인도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융사기가 아니라 국가 신뢰의 시험대”라고 강조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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