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시니어 인턴으로 재취업한 노인이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젊은 CEO는 패션 회사에서 노인이 해낼 수 있는 일거리가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드니로는 노련한 감각으로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낸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는 기술 진보가 지속된다면 100년 뒤 손주 세대는 하루 세 시간, 주 15시간만 일하고 남는 시간을 여가와 교양에 쓰게 되리라 내다봤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케인스의 낙관적 예측은 절반만 맞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에 파고들 만큼 기술은 비약적으로 진보했지만 주 15시간 노동을 실현한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케인스는 기술 진보가 가져온 시간 절약의 혜택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구조적 모순을 간과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 사이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8만 5000개 줄었고, 감소한 일자리의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되어 있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개 늘어났는데 그 증가분의 75%가 같은 AI 고노출 업종에서 나왔다. 한국은행은 앞선 보고서에서 주니어가 맡아 오던 정형화된 규칙 기반 업무는 AI로 대체하기 쉬운 반면 시니어가 담당하는 맥락 이해와 대인 관계, 조직 관리는 AI가 대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청년 고용 위축을 AI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흐름 자체는 선명하다.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스튜어트 드레이퍼스 형제에 따르면 인간의 기량(know-how)은 다섯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능력이다. 첫 계단에 선 초심자는 맥락과 무관한 규칙과 절차 매뉴얼에 기대어 서툴고 느리게 일한다. 하지만 초심자의 일이라고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단계는 정해진 규칙을 몸에 익히고, 수없이 실수하고, 곁에서 선배의 직관과 판단을 관찰하며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련의 시간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고 전문가의 기량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최고 단계인 전문가에 이르면, 매뉴얼이 없어도 상황이 요구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꿰뚫어 보며 해법을 찾아낸다. 드니로가 회사의 크고 작은 위기 앞에서 보여 준 것이 바로 이 총괄적 기량이었다.
문제는 케인스의 손주들이 기량 습득의 첫 단계를 밟고자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지금, AI가 규칙과 절차에 의존하는 초심자의 자리를 위협하며 청년 세대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심자의 수련 과정을 생략한 사회는 다음 세대의 전문가를 결코 길러낼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 늘 그래왔듯 AI 역시 어떤 문제는 해결하지만, 동시에 전에 없던 사회적 균열을 만들어 낸다. 기술은 대단하지만 결코 전능하지 않으며, 알고리즘 바깥에서 기회의 문을 지켜내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우리 인간은 답을 찾아야만 한다.
노명우 아주대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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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아주대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2026-10-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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