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편두통이라더니”…무려 11차례 오진 끝에 사망한 50세男의 비극

김성은 기자
수정 2025-07-23 22:00
입력 2025-07-23 22:00

영국에서 50세 남성이 희귀한 뇌진균 감염증을 11차례나 편두통으로 잘못 진단받은 뒤 8개월간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어린 아들의 종양 수술까지 겹쳐 극심한 생활고까지 겪고 있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 더 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저우 출신으로 영국에 거주하는 궈칭후씨는 2023년 10월 몸에 이상 증상을 느끼고 5주간 현지 공공 의료기관인 국가보건서비스(NHS) 병원과 사설 병원을 수차례 방문했으나, 매번 편두통이라는 진단만 받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생제만으로는 몸이 낫지 않았다. 결국 그는 첼시웨스트민스터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는데, 여기서도 편두통 진단을 받았다.
아내 창위자오(35)씨는 “처음에는 의사들을 믿었지만 치료 효과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의사들은 그저 편두통이라는 말만 반복했어요”라고 했다.
궈씨는 집에서 5차례나 쓰러졌다. 그러나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NHS 치료 내역을 보고는 편두통 진단에 따라 그를 매번 집으로 돌려보냈다. 궈씨는 뇌 스캔까지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가족은 사설 신경과 전문의를 찾았다.
이 의사는 뇌수막염을 의심하며 ‘요추 천자’(척수액 검사)를 권했다.
하지만 이 진단서를 들고 NHS로 가져가자 의료진은 사설 병원 의견을 개인적 견해로 치부하며 척수액 검사를 거부했다.
궈씨가 다섯 번째로 쓰러졌을 때는 구급대원이 이미 여러 번 입원했다가 퇴원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병원 이송을 거부하며 화상 진료를 주선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화상 통화로 환자의 얼굴을 확인한 병원 의사는 즉시 구급차 출동을 지시했다.
그날 밤 컴퓨터 단층촬영(CT) 스캔 결과는 놀라웠다.
뇌압이 위험할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마침내 요추 천자가 시행됐다. 무려 12번째 병원 방문에서야 이뤄진 검사였다.
‘크립토코쿠스 뇌수막염’이라는 정확한 진단이 나왔다.
이는 곰팡이의 일종인 진균이 뇌와 척수를 감싸는 뇌수막에 감염을 일으키는 극히 드문 질병이다.
궈씨는 즉시 중환자실로 이송돼 여러 차례 뇌수술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12월 전공의 파업 기간이 겹쳤다. 궈씨의 상태는 다시 나빠졌다. 구토와 혈변 증상을 보였지만 의사는 오지 않았다.
그날 밤 궈씨의 심장은 멈췄다.
아내 창씨는 당시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남편이 저를 안으며 ‘아들을 부탁해’라고 말했어요. 남편을 보고 집에 도착한 지 15분 만에 잠자던 아들이 ‘아빠 안 돼!’라고 비명을 지르며 깼고, 그때 병원에서 남편의 심장이 멈췄다는 전화가 왔죠”라고 회상했다.
궈씨는 세 차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다행히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의식을 찾은 그가 아내를 다시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은 단 3주에 불과했다.
다시 의식을 잃은 그는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창씨의 어린 아들도 같은 시기 종양 진단을 받아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창씨는 “아들이 마취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남편이 위독하다는 병원 전화를 받고 수술실 사이를 뛰어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아들은 건강하지만 의사들은 종양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창씨는 남편의 병으로 100만 파운드(약 19억원) 투자를 받은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로젝트 취소 비용까지 개인적으로 떠안으며 파산에 이르렀다.
비자 문제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창씨는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현재 그녀는 라이브 스트리밍과 사진 촬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SNS) ‘샤오홍슈’(레드노트)에 올린 창씨의 영상은 100만 조회수에 육박했다.
검시관은 나중에 이 질병이 극히 드물긴 하나, 의료진의 ‘확증 편향’으로 인해 제때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현재 창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창씨는 기부 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9600파운드(약 18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았다.
창씨는 “이제는 다시 일어설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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