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폭등에 많아진 ‘금 중고 거래’…“선입금” 사기 우려도[취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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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호 기자
김서호 기자
수정 2025-03-15 13:00
입력 2025-03-15 13:00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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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이 연이어 상승하던 지난 2월 서울 종로 삼성금거래소에 금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도준석 전문기자
금값이 연이어 상승하던 지난 2월 서울 종로 삼성금거래소에 금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도준석 전문기자


“경찰서 앞에서 거래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선입금부터 해 주세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골드바를 판매한다는 이와 채팅을 하던 박영희(56)씨는 옆에서 뭔가 이상하다며 만류한 아들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돈을 송금할 뻔했습니다. 최근 주위에서 금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좀 사둘걸 후회하고 있던 차라 순간적으로 흔들린 것입니다. 직접 만나서 실물을 보고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판매자는 답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수’를 탔습니다.

최근 폭등한 금값으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금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온라인을 통한 개인 간의 금 거래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역이용하는 사기 수법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한 유명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2월 한 달 동안에만 750여개에 달하는 골드바 거래 게시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이는 1월(450여개)에 비해 1.5배 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시세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매물들에는 수십 개의 관심 표시와 채팅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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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금값 상승에 시중은행 골드바 판매가 급증한 가운데, 한국조폐공사가 골드바 공급을 중단하면서 전례 없는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서 시민들이 금 시세를 문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월 금값 상승에 시중은행 골드바 판매가 급증한 가운데, 한국조폐공사가 골드바 공급을 중단하면서 전례 없는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서 시민들이 금 시세를 문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신성진(58)씨도 최근 ‘문고리 거래’ 수법에 당할 뻔했습니다. 판매자와 직거래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가던 신씨는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아파 병원을 가게 돼 만나서 거래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문고리에 쇼핑백을 걸어 놓았으니 입금을 하고 찾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문고리에 걸려 있는 쇼핑백 사진도 함께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수상하다고 느낀 신씨는 돈을 송금하지 않았고, 도착한 약속 장소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문고리 거래 수법은 기존에도 온라인 사기에서 이용되곤 하던 수법이지만, 최근 금값 폭등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각종 ‘인증’을 통해 구매자들을 안심시키는 수법도 발전했습니다. 기존에는 온도(매너) 지수 등을 보고 판매자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것이 예방책 중 하나였지만, 최근에는 고의로 정상적인 활동을 통해 온도를 높이거나 계정을 구매한 뒤 가격대가 비싼 골드바 등을 이용해 ‘한탕’을 해 먹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실물 골드바 사진 옆에 판매자의 닉네임과 날짜 등이 적힌 종이를 두고 속이는 작업도 상당히 정교해져 방심했다가는 피해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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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관세청 관계자가 금 밀수 단속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최근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금값의 국제 시세가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과 안전자산 수요증가로 국내 금 시세가 국제 시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발생, 시세 차익을 노린 밀수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관세청은 금 밀수 차단을 위한 집중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지난 5일 오전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관세청 관계자가 금 밀수 단속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최근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금값의 국제 시세가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과 안전자산 수요증가로 국내 금 시세가 국제 시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발생, 시세 차익을 노린 밀수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관세청은 금 밀수 차단을 위한 집중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전문가들은 온라인을 통해 골드바와 같은 고가 제품을 거래할 때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남들이 돈을 벌었다고 하니 조급해지는 밴드웨건 효과로 인해 구매자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을 노리는 범죄 수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밴드웨건 효과는 특정 상품에 대한 개인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형상으로, 주로 어떠한 상품이 대중적으로 유행하면 사람들이 무작정 뒤따라 구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반드시 대면해서 거래를 진행하고, 신분증과 보증서 등을 포함해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거쳐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최근 국제 시세에 비해 국내 시세가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꺼지면서 금값이 크게 떨어졌지만, 경제 불확실성이 큰 만큼 언제라도 다시 금값이 상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불경기 속 큰 수익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한 거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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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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