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파동부터 얼리드래프트까지… ‘대형 신인’들이 바꾼 KBO 드래프트 40년사 [박현진의 클리닝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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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수정 2026-09-21 13:33
입력 2026-09-21 11:38
세줄 요약
  • 선동열·양준혁 파동, 드래프트 규정 개편 촉발
  • 지역연고제에서 전면 드래프트까지 제도 변화
  • 얼리드래프트·참가 신청제, 최근 쟁점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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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는 프로야구가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아마추어 야구와의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그 중심에는 늘 시대를 흔든 대형신인들의 입단 파동이 있었고 그러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려는 이들과 이를 막으려는 이들의 치열한 신경전이 존재했다. 리그의 지형을 바꾼 신인들을 중심으로 KBO 신인드래프트의 변천사를 짚어봤다.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는 1982년부터 시작됐지만 당시는 프로야구 출범을 위한 선수를 수급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본격적인 드래프트는 1983년부터라고 보는 것이 맞다. 초창기 드래프트는 선수에 비해 구단의 권리가 강했는데 그 구도에 처음 균열을 낸 인물이 선동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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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올스타전을 앞두고 프로야구 레전드 40인에 뽑힌 선동열이 본행사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지난 2022년 올스타전을 앞두고 프로야구 레전드 40인에 뽑힌 선동열이 본행사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선동열은 1985년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금 규모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끝에 입단을 포기하고 실업야구 한국화장품과 계약을 맺었다. 그 뒤 선동열은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해태 입단식을 가졌는데 이번엔 한국화장품이 반발하면서 프로 입단 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부랴부랴 합의에 나서 선동열을 전반기에 출전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곡절끝에 선동열은 후반기에 뒤늦게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초특급 신인이었던 선동열이 그해 신인왕에 오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다. 그해 신인왕은 같은 팀의 이순철이 차지했다.

이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실업야구에 진출한 선수는 실업야구에서 최소 2년을 뛰어야 프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다. KBO도 지명선수의 계약교섭권 등 신인선수 수급 체계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어쨌건 초창기 신인 드래프트의 핵심은 프랜차이즈를 강화하기 위한 ‘지역연고제’였다. 연고 구단이 해당 지역 출신 유망주를 우선 지명하는 ‘1차지명’과 우선지명에서 제외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2차지명’으로 진행됐는데 1985년까지는 1차지명이 사실상 무제한이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선수 독점, 구단 간 전력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1차지명 인원을 1986년 10명, 1990년 2명, 1991년 1명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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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이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장타를 만들어내고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양준혁이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장타를 만들어내고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그 직격탄을 맞은 것이 양준혁이었다. 1992년 삼성 라이온즈는 투수 최대어 김태한을 잡기 위해 한 장뿐인 1차지명권을 행사했다. 야수 최대어 양준혁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에 양준혁은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했고 1993년 1차지명을 받아 결국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KBO는 고의적인 지명거부를 막기 위해 2차 지명권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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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1997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된 뒤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이승엽이 1997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된 뒤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이때까지만 해도 신인드래프트는 대졸 선수 위주로 진행됐다. 그 덕분에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고졸 연고 자유계약’ 제도를 통해 연고지역 고교 졸업 선수는 특별한 지명 절차 없이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김원형(쌍방울), 정민철(빙그레 이글스), 이승엽(삼성) 등 고졸 신인들이 프로에 직행해 성공을 거두자 드래프트 시장의 판도가 흔들렸다. KBO는 더 많은 대졸 선수들이 1차지명을 받을 수 있도록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고졸 우선 지명’ 제도를 한시적으로 도입하기도 했으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1차지명은 지역별로 편차가 심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편법도 다양했다. 우수 고교들이 몰려있는 서울은 경쟁이 더 심했는데 1999년 박기범이 서울을 피해 인천 동산고로 전학 후 현대 유니콘스 1차 지명을 받자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전학생 및 유급자 1차 지명 제한’ 규정이 새로 마련됐다. 2000년엔 해태가 2차 1순위로 지명한 마일영을 현대에 현금 5억원을 받고 양도했는데 이를 계기로 ‘신인 지명권 매매 금지’ 조항이 규약에 명시됐다.

2010년에는 전력평준화를 위해 지역 연고 지명제를 폐지하고 성적 역순으로 선수를 뽑는 전면 드래프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이후 지방 구단들과 아마추어 야구계를 중심으로 ‘연고지 학교 야구팀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2014년 아마추어야구 지원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연고 1차 지명(1명)을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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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6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6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에는 드래프트 참가 신청제가 도입됐다. 그전까지는 졸업예정 선수 전체가 자동으로 지명대상이 됐다. 그런데 2020년 지명 이후 학교 폭력 논란으로 지명 철회된 김유성(두산 베어스) 사례와 드래프트 직전 해외 진출 선언을 해 지명권을 낭비할 뻔했던 나승엽(롯데 자이언츠) 사례 등이 발생하면서 선수 본인이 직접 신청서를 제출한 경우에만 지명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1차지명 부활 이후로도 지역 불균형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됐고 2023년부터는 1차 지명제도를 완전 폐지하고 11라운드 전면 드래프트로 개편했다. 대학야구 활성화를 위해 4년제 대학교 2학년 재학생도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는 ‘얼리드래프트’를 본격 적용하기 시작했다. 2024년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는 최대어로 꼽히던 장현석이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자 탬퍼링을 둘러싼 국내 구단과 해외 구단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엔 키움이 2023시즌부터 계속 최하위로 처지면서 신인 최대어를 싹쓸이하자 하위권 팀의 탱킹을 방지하기 위한 로터리픽 도입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체육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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