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美, 진보는 北 눈치 보느라… 잠재적 핵 능력 확보 외면” [최광숙의 Inside]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수정 2025-10-21 03:55
입력 2025-10-21 01:03

송민순 前 외교통상부 장관

현실 직시한 대북정책 필요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한 후
日·獨처럼 잠재적 핵 능력 갖춰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없이도 가능
개성공단 재개 추진은 시대착오적
중대 변곡점에 선 한미동맹
美 핵우산에만 의존하는 건 무책임
NPT 탈퇴 후 핵무장 ‘무모한 선택’
실용외교는 편익 추구로 보일 수도
美와 자립적 동맹관계로 나아가야
노무현 정부 때 6자회담을 이끌며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전력투구했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제 대응 전략을 바꾸었다. 송 전 장관은 지난 15일 서울 남산 자락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독일처럼 잠재적 핵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북핵에 대한 현명한 대응이자 우리의 살길이라고 했다. 송 전 장관은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미국 눈치 보느라, 진보는 북한 신경 쓰느라 잠재적 핵 능력 확보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통탄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자주파·동맹파 갈등, 개성공단 추진 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미지 확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미사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재개 주장은 국제사회 제재를 정면 위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예전에는 핵 개발 저지를 위해 개성공단을 가동했지만, 지금은 북한이 핵 개발의 선을 넘은 상황에서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이지훈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미사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재개 주장은 국제사회 제재를 정면 위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예전에는 핵 개발 저지를 위해 개성공단을 가동했지만, 지금은 북한이 핵 개발의 선을 넘은 상황에서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이지훈 기자


-북한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자주파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 간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자주파는 인종민족주의 성향으로 한민족 공동체를 내세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민족주의다. 정치사회체제와 시민정신이 극도로 달라진 북한과 장래를 함께할 가능성을 가까운 미래에 만들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은 여러 방면에서 국가이익에 맞지 않는다.”

이미지 확대
노무현(오른쪽)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 안보실장을 지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6년 청와대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꺼렸으나 송 실장은 북핵 문제 등 현안을 풀기 위한 한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설득해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연합뉴스
노무현(오른쪽)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 안보실장을 지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6년 청와대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꺼렸으나 송 실장은 북핵 문제 등 현안을 풀기 위한 한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설득해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연합뉴스


●불법적 핵보유국 北과 경협 명분 없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한 견해는.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 실현을 위해 북한을 적대 세력이 아닌 정상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국가론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북한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엔에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엄연히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와는 대립 상태에 있는 이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개성공단 추진 역시 논란이다.

“북핵으로 안보와 국민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제 교류를 하자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불법적인 핵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이탈해선 안 된다. 무슨 명분으로 북한에 물자를 반입하고 돈을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과거 개성공단이 가동된 적이 있지 않나.

“당시는 북한이 핵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함께 살아보자는 차원에서 공단을 가동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선을 완전히 넘은 상태에서 옛날처럼 하자는 주장은 황당하다. 잠깐 낮잠을 잔 사이 20년이 지났다는 것을 모르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소설 속의 시대착오적 인물 립 반 윙클을 연상시킨다.”

이미지 확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달 말 저서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달 말 출간되는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은 논고랑이 불분명하면 이웃 간 싸움이 벌어지듯 남북한은 물론 미중일 등 주변국 관계 역시 서로가 지켜야 할 경계가 분명해야 좋은 이웃으로 지낼 수 있고,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도 만들고 통일의 씨앗도 보존할 수 있다는 한국 외교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지훈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달 말 저서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달 말 출간되는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은 논고랑이 불분명하면 이웃 간 싸움이 벌어지듯 남북한은 물론 미중일 등 주변국 관계 역시 서로가 지켜야 할 경계가 분명해야 좋은 이웃으로 지낼 수 있고,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도 만들고 통일의 씨앗도 보존할 수 있다는 한국 외교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지훈 기자


●북핵·미사일 타깃은 미국 아니라 한국

-북한은 최근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군사력을 과시했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 주민들에게 사회주의국가에서 김정은의 지위가 공고하다는 것을 알리고 대외적으로 대남·대미 협상과 위상 활용, 무기 수출을 겨냥한 방산 홍보 등 다목적 행사였다. 중요한 것은 북한 핵의 실제 타깃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점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나.

“북핵 문제는 과거 핵을 개발 중이던 때와 이미 핵을 보유한 현재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실상을 인정한 상태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핵을 사실상 인정한다면 향후 대북정책은.

“비핵화를 전제로 대북정책을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6자회담 등은 핵실험 과정에 있던 북한이 핵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한미중 등 주변국이 상황 관리를 하며 협상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평가하라’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북핵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대응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도록 잠재적 핵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무기화되지 않은 무기 체계’(unweaponized weapon system)를 갖춰야 한다. 미국은 핵우산 제공을 공약하고 있지만 공약을 이행할 핵우산은 얇아지고, 핵우산 보험료율도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과 한국의 잠재적 핵 능력을 상호 보완해 한반도 핵 균형을 이뤄야 한다.”

-잠재적 핵 능력 확보 방안은.

“일본·독일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내에 핵을 가질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있다. 우리도 미국과 협의해 NPT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등 핵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한미원자력협력 협정의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

이미지 확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7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북핵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7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북핵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美는 죽고 사는 동맹, 中은 먹고사는 관계

-우리는 왜 일본·독일처럼 못 하나.

“나는 오래전부터 잠재적 핵 능력이 필요하고, NPT 체제 안에서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이를 위해 확고한 정치적 의지와 외교 역량, 국론 결집이 필요한데, 국론이 가장 중요하다. 국론이 모아지지 않으면 미국을 설득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미국 눈치 보느라, 진보는 북한 신경 쓰느라 잠재적 핵 능력 확보 주장을 못 하고 있다.”

-일각에서 핵 무장론이 제기되고 있다.

“현존하는 안보위험이 임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하는 것은 위험한 골짜기로 가는 길이다. 결국 핵무장은 ‘무모한 선택’이고, 미국이 보호해주길 바라기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둘 사이에서 우리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격해지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우리의 스탠스는.

“미국은 목숨을 같이하는 군사동맹이고, 중국은 장사해서 먹고사는 인근 우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를 같은 차원에서 다룰 수는 없다.”

-한미동맹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당연하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거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동맹체제가 아니라 ‘내 담장은 내가 지키는’ 자립적 동맹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미국 방문 때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현장 분위기에 맞춘 과잉 행보다. 미국에 가서 그런 말을 했다면 중국 가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칙과 중심이 없는 나라로 비칠 수 있다. 바람에 따라 깃발은 움직일 수 있지만 깃대가 왔다갔다하면 안 된다. 외교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예술이다. 말로 기교 부리는 게 아니다.”

-현 정부는 ‘실용외교’ 기치를 내걸었다.

“실용외교라는 말은 상대방 눈치를 봐 가면서 자신의 편익을 취하려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외교를 ‘실용적’으로 하는 것과 ‘실용외교’를 내세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의존 아닌 독자적 방위 능력 필요

-최근 한미 관계가 불안정해 보인다.

“트럼프의 미국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동맹국과도 문제가 있다. 특히 한미동맹이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사실인 만큼 자립적인 안보 능력을 최대한 갖춰야 한다. 먼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행사해야 한다.”

-한미동맹 현대화의 핵심은 전작권 전환인가.

“자기 나라 군대의 사실상 전부를 외국군이 작전통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첨단 무기만으로 강군이 될 수는 없다. 무기와 함께 사기가 따라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거론된다. 대만을 놓고 미중 간 충돌이 발생한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어느 일방이 태평양 지역에서 제3의 세력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으면 자기 나라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을 취하게 된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미중이 충돌하면 주한미군은 자동개입하고 한국도 직간접으로 개입하게 된다.”

-한국 외교의 최대 과제는.

“지금 트럼프의 관세 부과 등 통상 문제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데, 사실 더 중요한 과제는 안보다. 잠재력 핵 능력 확보가 중요하다. 일반인들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얼마나 막대한 유형무형 비용을 치르는지 알기 어렵다. 관세나 투자를 비롯한 통상 협상에도 그 바닥에는 한국의 안보 약점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크게 작용한다.”

■송민순은 누구

외시 9회로 1975년 외교부에 들어간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수석대표 등 주요 핵심 포스트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다뤘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지낸 후 18대 국회의원(민주당 비례대표)을 거쳐 북한대학원대 총장을 역임했다. 2006년 미국 방문을 꺼리던 노 전 대통령을 설득해 한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는 등 강단 있는 성품이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잠재적 핵 능력 확보, 전작권 환수를 주장하는 ‘자강파’다. 저서로 비핵화와 통일 외교의 현장을 회고한 ‘빙하는 움직인다’와 ‘좋은 담장 좋은 이웃’(근간)이 있다. 이달 말 출간되는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은 50년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외교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최광숙 대기자

이미지 확대
최광숙 대기자
최광숙 대기자
2025-10-21 3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닫기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