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자진 급여 삭감’과 ‘새벽 3시 출근’이 화제다. 다크서클을 가리키며 “하루 2~4시간도 못 잔다. 피부에도 안 좋다”고 하거나 “지금 입고 있는 속옷도 온라인으로 샀다”는 파격 발언은 소셜미디어(SNS)에서 연일 시선을 끌고 있다. 그의 소탈한 화법과 근면한 이미지가 8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 화제성 뒤에는 쉽게 박수 칠 수 없는 문제가 숨어 있다.
선거분석·정당론을 연구하는 호세이대 시라토리 히로시 교수는 그의 행보를 일본 정치가 반복해온 ‘했다는 느낌’의 정치라고 꼬집었다. 눈으로 확인되는 상징적 행동으로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질적 개혁은 뒤따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의 ‘공금 환류’ 의혹이 불거지며 ‘정치와 돈’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자민당 비자금 파티가 정계를 뒤흔든 지 3년이 지났지만 정치자금 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 지점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태도는 더욱 대비된다. 재정·안보 이슈에서는 거침없이 강경한 메시지를 내는 총리가 유독 ‘정치와 돈’ 문제 앞에서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비자금 사건으로 2023년 당직 정지 처분을 받았던 구아베파 중진 하기우다 고이치를 간사장대행으로 기용한 것도 그다.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비자금 연루 의원의 등용에 대해 선거에서 엄정한 심판을 받았는지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선거를 거치지 않은 사토 아키라 참의원을 관방부 장관에 앉히며 스스로 밝힌 기준을 무너뜨렸다. 정작 가장 시급한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뒤로 밀려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상징이 본질을 가리는 방식은 ‘새벽 3시 출근’에서도 반복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버리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겠다”는 연극 대사 같은 그의 말은 워커홀릭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를 채워 줄 순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다카이치 내각은 산업계 요구에 맞춰 근로 시간 상한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장시간 노동의 부활이 아니라 재량권 확대다. 선택권을 넓혀 효율을 높이자는 논의인데 총리는 장시간 노동을 몸으로 시연하고 있다. 과로사가 사회문제였던 일본에서 이는 노동의 미래를 뒤로 돌리는 부적절한 메시지가 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강한 구호와 상징적 장면으로 정치의 흐름을 바꾸는 ‘고이즈미 극장’을 만들었다. 장면은 화제를 모았지만 끝내 남은 것은 내각 교체의 반복과 깊어진 정치 불신이었다. 다카이치 내각을 떠받치는 인기 역시 이런 ‘극장정치’ 패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연출은 정치의 일부다. 그러나 연출에 시선이 뺏기는 순간 정치는 방향을 잃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 유권자의 눈이다. 장면이 아니라 실질을 보고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강렬한 장면은 잠깐의 쾌감을 줄 뿐, 미뤄진 과제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명희진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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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진 도쿄 특파원
2025-11-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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