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재판으로 본 ‘계엄의 재구성’
尹, 취임 반년 만에 “싹 쓸어버릴 것”2년 뒤 3월부터 “軍 역할을” 구체화
당일엔 국무위원 소집 후 일방 선포
홍윤기 기자
대한민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3일로 1년을 맞는다. 1일 내란 특검의 윤 전 대통령 공소장과 재판 증언 등을 기반으로 해 계엄 선포의 전말을 재구성했다.
첫 비상계엄의 조짐은 선포 2년 전인 2022년 11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을 하며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내가 총살당하는 한이 있어도 싹 쓸어 버리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2년 뒤인 2024년 3월 29일에는 좀더 구체화된 발언이 등장했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김용현 경호처장 등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은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군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여 전 사령관은 같은 해 5~6월 삼청동 안전가옥 저녁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언급하자 무릎을 꿇고 계엄을 만류했다고 재판에서 증언했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초 한남동 관저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 전 사령관에게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정치인들)에 대해 조치해야 한다”며 계엄 의지를 다시 내비쳤다. 계엄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는 장면도 뒤늦게 알려졌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해 10월 1일 윤 전 대통령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일부 정치인 이름을 부르며 본인 앞에 잡아오라 했다”면서 “본인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계엄의 밤’이 엄습한 지난해 12월 3일은 오전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김 전 장관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오영대 국방부 인사기획관에게 오후 9시 30분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오후 8시에는 윤 전 대통령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전화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전하면서 본격적으로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위원 소집이 시작됐다.
한 전 총리는 오후 8시 40분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에게 “대통령께서 계엄을 선포하려는 것 같다”고 전달했다. 이후 9시 37분 송미령 전 농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해 “빨리 오세요”라고 재촉했다.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재판에서는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한 전 총리와 김 전 장관이 손가락으로 ‘4명’, ‘1명’ 등을 표시하며 국무회의 개최 정족수(11명) 현황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공개됐다.
오후 10시 17분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송 전 장관 등에 이어 마지막 참석자인 오영주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도착하면서 11명의 정족수가 채워졌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문을 국무위원들에게 나눠 주고 계엄 계획을 설명한 뒤 계엄 발표를 위한 브리핑실로 떠났다. 내란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실로 소집된 이유와 국무회의 안건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통지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결국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 전 대통령은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전 대통령과 일부 측근들의 계획 속에만 존재했던 계엄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박재홍·고혜지 기자
2025-12-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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